이집트이야기Egypt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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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UMENTS

피라미드·신전·무덤

돌이 많이 남은 이유는 이집트 사람이 돌에서만 살아서가 아닙니다. 집은 진흙이었고, 왕과 신의 자리는 돌로 남겼습니다. 어떻게 쌓았는지는 일부가 밝혀졌고, 일부가 아직 논쟁입니다.

WHY

역사

왜 돌로 남겼나

왕릉과 신전은 자랑이자 종교였습니다. 왕은 죽어서도 제사를 받아야 질서가 이어진다고 보았고, 돌은 진흙 벽돌보다 그 말을 오래 남겼습니다.

  1. 무덤 단지는 구멍 하나가 아닙니다. 강가의 신전, 이어 주는 길, 제사 신전, 왕릉이 한 세트인 경우가 많습니다.
  2. 신전은 신의 집이면서 곡물 창고와 공방이 딸린 기관이었습니다.
  3. 벽에 그린 승리는 공식 화면입니다. 전쟁 기록과 늘 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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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집은 진흙 벽돌이었습니다. 그래서 궁전은 사라지고 돌 신전과 무덤이 남았습니다. 남은 것만 보고 이집트 사람이 전부 신전에서 살았다고 보면 풍경이 기울어집니다.

PYRAMIDS

역사

피라미드

고왕국 왕의 무덤 형식입니다. 사카라의 계단식 피라미드에서 기자와 다슈르의 매끈한 피라미드로 이어집니다. 발전소나 곡식 창고라는 말은 근대 이후의 상상입니다.

  1.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는 처음에는 낮은 단묘(마스타바)였다가 여러 번 커졌습니다.
  2. 쿠푸의 대피라미드는 원래 높이가 약 146미터였습니다. 겉돌과 꼭대기가 빠져 지금은 그보다 낮습니다. 밑변은 약 230미터입니다.
  3. 속돌의 많은 부분은 기자 현지에서, 매끈한 겉돌은 투라에서, 무덤 방의 일부 화강암은 아스완에서 왔습니다. 강이 운반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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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끌어 올리는 경사로가 쓰였다는 데는 많은 연구자가 동의합니다. 경사로가 일자였는지, 꺾였는지, 안쪽에 있었는지는 아직 의견이 갈립니다. 하나의 비밀 공법을 단정하지 않습니다.

헤로도토스는 십만 명이 석 달에 한 번씩 갈렸다고 적습니다. 기원전 5세기의 숫자입니다. 이집트 급여 장부가 아닙니다. 기자에는 일꾼 마을과 감독관 무덤, 빵 굽던 자리가 발굴되었습니다. 조직된 노동이지, 출애굽 이야기의 노예 공사장으로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왕의 방 위쪽 공간에는 작업반 이름이 붉은 글씨로 남아 있고, 그 안에 쿠푸의 이름이 있습니다. 1837년 하워드 바이스가 그 공간을 열었습니다. 이 글씨가 피라미드의 주인을 가리킨다는 것이 주류의 판단입니다.

피라미드는 제1중간기 이후 작아지거나 다른 형식으로 바뀝니다. 신왕국 왕은 피라미드 대신 왕가의 계곡에 묻힙니다.

SPHINX

전설과 역사가 섞임

기자의 스핑크스

사자 몸에 왕 머리를 한 거대한 상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수수께끼를 내는 스핑크스와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 그리스 이야기는 나두신화에 있습니다.

  1. 대부분의 이집트학자는 카프레(쿠푸의 아들) 시대의 작품으로 봅니다. 채석장 바위를 남긴 채 깎았다는 설명이 유력합니다.
  2. 쿠푸 시대라는 소수 의견도 있습니다. 왕 이름이 새겨진 당대 명판이 상에 붙어 있지는 않습니다.
  3. 앞발 사이의 꿈의 비석은 신왕국 투트모세 4세의 글입니다. 모래를 치우면 왕위를 주겠다는 스핑크스의 약속이 적혀 있습니다. 건설 일지가 아니라, 천 년 뒤 왕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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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가 나폴레옹의 대포에 맞았다는 말은 근거가 약합니다. 코가 없는 모습은 그 원정 이전의 그림에도 나옵니다. 누가 언제 떨어뜨렸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지하에 기록 보관소가 있다는 현대 전설은 발굴로 확인된 사실이 아닙니다. 상 주변의 신전과 카프레의 피라미드 길이 이 상을 왕릉 단지 쪽으로 연결합니다.

TEMPLES

역사

신전

카르나크, 룩소르, 아부심벨은 ‘이집트 신전’이라는 한 장의 사진이 아닙니다. 세기도 다르고, 모신 신도 겹치면서 다릅니다.

  1. 카르나크는 여러 왕이 증축한 아문 신전 단지입니다. 열주 홀은 세티 1세와 람세스 2세 쪽이 큽니다.
  2. 아부심벨은 람세스 2세가 남쪽 국경에 깎아 만든 신전입니다. 큰 신전과, 왕비 네페르타리를 함께 모신 작은 신전이 있습니다.
  3. 1960년대 아스완 하이 댐 공사 때 아부심벨은 잘려 더 높은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지금 보이는 위치는 고대의 좌표 그대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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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셉수트의 장제전(데르 엘바하리)은 테베 서쪽 절벽 아래의 계단식 신전입니다. 푼트 땅으로 보낸 교역 행렬이 부조로 남아 있습니다. 푼트의 정확한 위치는 홍해 남쪽으로 좁혀지지만, 한 도시 이름으로 확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에드푸의 호루스 신전처럼 오늘날 거의 온전한 일부 신전은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완성되었습니다. 고왕국부터 그 모습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TOMBS

전설과 역사가 섞임

무덤

무덤은 시신을 감추는 곳이자, 기억과 제사를 이어 주는 곳이었습니다. 도굴은 고대부터 있었습니다. ‘저주’는 그 역사를 20세기 신문이 한 번 더 각색한 이야기입니다.

  1. 고왕국은 피라미드와 귀족의 단묘, 신왕국 왕실은 바위 무덤이 중심입니다.
  2. 투탕카멘의 무덤은 1922년에 열렸고, 속은 비교적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가 가장 위대한 왕이라서가 아닙니다.
  3. 카르나본 경은 1923년 감염으로 죽었습니다. 카터는 1939년에 죽었습니다. 발굴팀이 차례로 쓰러졌다는 줄거리는 당시 언론의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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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장례 글에는 무덤을 더럽히는 사람을 경고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사와 재산을 지키려는 말입니다. 할리우드 영화의 되살아나는 대사와 같은 문장은 아닙니다.

미라를 만드는 일은 내세에 몸이 필요하리라는 믿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절차는 신분과 시대에 따라 달랐습니다. 존중해서 방법의 세부 조리법으로는 적지 않습니다. 신앙의 자리는 내세에 있습니다.

『미이라』 영화의 하무나프트라는 실존 도시가 아닙니다. 영화 속 임호테프는 저주받은 사제입니다. 역사 속의 임호테프는 조세르 시대의 관리로, 나중에 의술의 현자로 받들어졌습니다. 두 이름을 한 전기로 붙이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아래에는 극과 다큐멘터리가 함께 있습니다. 극은 분위기를 잡는 데 도움이 되고, 다큐멘터리는 발굴 현장의 그림입니다. 어느 쪽이든 사실 관계의 교과서는 아닙니다. 불법 영상 링크는 없습니다.

  • 「미이라」The Mummy · 1999 · 영화

    이집트 하면 먼저 떠오르는 모험 영화입니다. 1920년대 발굴 열기와 저주 전설이 어떻게 오락이 됐는지 볼 때 유용합니다.

    하무나프트라는 실존 도시가 아닙니다. 영화의 임호테프는 저주에 묶인 사제이고, 사자의 서는 마법책처럼 쓰입니다. 역사 속의 임호테프는 제3왕조 조세르 시대의 관리로, 후대에 의술의 현자로 받들어진 사람입니다. 투탕카멘의 무덤을 열면 사람들이 차례로 죽는다는 줄거리는 고대 명문이 아니라 20세기 신문에서 커진 이야기입니다. 발굴자 하워드 카터는 1939년까지 살았습니다.

    투탕카멘조세르와 임호테프무덤과 저주 이야기

  • 「미이라」The Mummy · 1932 · 영화

    보리스 칼로프가 나온 이 작품이, 되살아난 미라라는 현대 이미지를 일찍 고정했습니다. 1999년 영화의 할아버지뻘입니다.

    줄거리의 임호테프와 부활은 창작입니다. 고대 이집트 장례는 되살아나 복수하는 괴물을 만들기 위한 절차가 아니었습니다. 제목만 같고 해가 다른 1999년 작품과 같은 이야기로 보면 안 됩니다.

    무덤내세

  • 「십계」The Ten Commandments · 1956 · 영화

    세실 B. 데밀의 큰 화면이, 많은 사람에게 출애굽의 첫 이미지였습니다. 율 브리너가 맡은 람세스가 그 예입니다.

    성경 서사극입니다. 파라오의 이름, 궁정 음모, 공사의 규모는 극이 채운 부분입니다. 피라미드를 이 시대의 노예가 쌓는 장면으로 기억하면 연대가 어긋납니다. 기자 피라미드는 고왕국, 람세스가 실존한다면 신왕국으로 천 년 가까이 떨어져 있습니다. 신앙의 장면을 발굴 보고서로 쓰지 않으면 됩니다.

    람세스 2세피라미드의 시대더 초즌 · 십계

  • 「갓 오브 이집트」Gods of Egypt · 2016 · 영화

    호루스와 세트라는 이름이 나온다는 이유로 이집트 신화 입문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구분이 필요합니다.

    판타지 액션입니다. 신의 키, 눈을 빼앗는 전투, 도둑 주인공의 모험은 고대 문헌의 줄거리가 아닙니다. 세트와 호루스가 다툰다는 큰 주제만 이집트 쪽에 뿌리가 있고, 나머지 설정은 영화가 만들었습니다. 신화를 이 각본으로 외우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기록에 남은 범위는 신에 짧게 적어 두었습니다.

    이집트 신

  • 「사카라 무덤의 비밀」Secrets of the Saqqara Tomb · 2020 · 다큐멘터리 · Netflix

    넷플릭스가 2020년에 공개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사카라에서 이집트 발굴팀이 고왕국 제5왕조 사제 와흐티에의 무덤을 살피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저주가 나오는 모험 영화와 달리, 무덤이 어떻게 열리고 이름이 어떻게 읽히는지에 가깝습니다.

    해설은 그 발굴의 이야기입니다. 사카라의 모든 무덤을 한 시대로 묶지 않습니다.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도 사카라에 있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 무덤은 그 피라미드보다 뒤인 제5왕조입니다. 신왕국 왕이 묻힌 왕가의 계곡과도 장소와 시대가 다릅니다. 화면의 감탄을 발굴 일지 전체로 외우지는 마세요.

    사카라의 계단식 피라미드무덤조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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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로 삼은 기록

  • 기자 작업반 낙서 · 쿠푸 피라미드 상부 공간, 1837년 바이스가 기록
  • 헤로도토스 『역사』 · 2권 124–126, 쿠푸에 대한 후대 그리스 전승
  • 투트모세 4세의 꿈의 비석 · 기자 스핑크스 앞발 사이
  • 하트셉수트 장제전 부조 · 데르 엘바하리, 푼트 교역
  • 마크 레너 등의 기자 발굴 · 일꾼 마을과 무덤
  • 하워드 카터의 발굴 기록 · 1922년 KV62

인용문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기록의 이름과 위치만 적습니다.